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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공연 실황 - 아이다 영화&공연&드라마

  메가박스 1관이 서태지M관으로 바뀐 이후, 언제부터인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HD 공연실황을 상영하기 시작하더군요. 서태지M관의 음향시설은 꽤 괜찮은 편이라서, 그 음향시설로 듣는 공연실황이란 건 어떨까란 호기심이 들어서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삼성역으로 가는 길에 소소한 일들이 있었죠.
 저녁 대신 먹을 떡을 사는데, 떡이 손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던가... 중간에 들린 미샤에서 피틴 아이라이너 종이 케이스가 전부 빈 것을 보고 짜게 식는다던가... (이게 점원들이 일부러 그런 줄 알았는데, 포장지가 투명한 것들은 안 그랬던 걸로 봐서 아무래도 꼬꼼화 눈새들이 들어왔다가 내용물만 쏙 빼간 게 아닌가 싶더군요.)

 대강 배를 채우고, 자리를 잡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적었습니다. 관객들의 연령층이 어느 정도 되는 게 놀라웠고요. 아무래도 오페라 공연 실황이란 무게감 때문에 젊은 층들은 상대적으로 찾아오지 않는 거 같았습니다. 현대카드 후원이라서 그런지 앞쪽의 광과는 없었고요, 중간중간 자막으로 현대카드 후원이란 언급은 했습니다.

 상영이 시작되자 오페라 피트의 튜닝 과정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튜닝 과정에서 역시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질은 훌륭한데, 역시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울림이란 게 없었어요. 실제로 공연장의 튜닝 과정을 들으면 그 불협화음 속에서 떨리는 공기의 흐름이라던가, 거기에 누군가가 있다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전 그들이 거기서 연주를 하고 있다는 의식이 좋아서, 그리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흔드는 멜로디가 좋아서 공연장을 찾습니다. 그런데 역시 녹화과정의 문제인지, 아니면 아직 인간의 기술로는 그것마저 재현하긴 무린지 그저 커다랗고 음질 좀 좋은 스크린에서 DVD를 본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오페라 가수들이 노래를 시작할 때 더더욱 그랬고요. 공연장에서 듣는 오페라 가수들이나 합창단의 노래는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공명점을 넘는 그들의 빼어난 목소리는 정말 인간의 목소리는 오싹하기까지 하니까요. 거기다 거기에 실린 감정을 직접 피부로 대하면 압도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역시 공연실황에서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어요.

 어차피 녹화한 걸 틀어주는 거나 보는 마당에, 그렇게 많은 걸 바래선 안되는 거였나 봅니다.

 하지만, 정말 오페라 가수들은 멋졌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다메스도 아이다도 아닌 암네리스였습니다. 이건 뮤지컬 아이다에서도 그랬지만, 이 오페라는 암네리스가 얼마나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공연의 질이 완전히 달라질 오페라였습니다.

 다행히 암네리스 역을 맡은 돌로라 자지크란 메조 소프라노는 기교와 감정 표현에 있어서 정말 원숙한 암네리스를 연기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돌로라 자지크의 마임이 너무 터프했단 것이었습니다. 공연이기 때문에 몸 동작이 크게 보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을까요? 암네리스의 몸놀림은 종종 질투심에 불타는 여성이 아니라 터프한 청년의 동작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라다메스의 처형이 결정되었을 때, 암네리스는 양손을 가리고 우는 게 아니라 한 손으로 터프하게 눈물을 찍고 눈물을 털어(!)냅니다. 뭐, 하지만 돌로라 자지크의 목소리에 비하면 그런 몸연기의 문제는 사실 사소한 거였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대가는 그런 사소한 단점 따위는 사뿐히 즈려밟고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거죠.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닭짓을 보면서 참 고전이라고 해도 로맨스는 닭짓이구나란 생각도 들었고요.

 2만원이란 비용이 좀 세긴 하지만, 저런 캐스팅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보려면 가장 싼 티켓값이 10-12만원일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싼 비용이겠죠. 현장감이란 건 여전히 아쉬운 점이지만요.

덧. 늘 듣던 승전곡이 실은 '위대한 여신 이시스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이시스 예찬가였단 점과 곳곳에서 나오는 이시스 예찬이 개인적으로 좀 뿜겼습니다. rpg에서 이집트 신화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서 추방자에게 호의적인 태도인 캐릭터를 하느라 그런 거겠지만요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아이다' HD 공연실황 상영 예매

 사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좀 무리하게 돈을 쓰긴 했습니다. 이것도 그런 돈지랄의 연장이긴 하죠. 그런데 그렇게 이거저거사들이고 가지고 싶은 걸 사들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난 이런 일을 내년 이맘 때면 못할지도 몰라란생각 말입니다. 아마도 내년 이맘 때면, 아마도 전 더 이상 신상명세란에 '미혼'이라고 기재할 수 없는 몸일 테니까요.

 슬슬 인생의 새로운 장을 준비해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새로운 장에서 저는 그렇게 다르지 않게 살겠지만,지금처럼 살 수는 없을 거예요. 미스일 때 지른 화장품이며 옷가지며 취미용 상품들 중 대부분은 버려야 할 지도 모르고요.(ㅋㅋ)

 아마도 내년 이맘 때쯤이면, 어느 금융상품이 더 수익률이 좋다던가 어느 어린이집이 좋다던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결혼한 이후에도 제가 즐기는 것들을 즐길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조금 슬퍼지긴 합니다.
 어느 걸 포기하고 어는 걸 선택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즐기려고 할 뿐이죠.

 사실 아이다는 그런 마음으로 보러 갔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다를 보면서 얻었던 것은 단순히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겨야겠단 위안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유치해서 더 펼쳐보지도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 쓰던 이야기의 원류가 실은 아이다였단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망국의 소녀와 승전국의 소녀, 비슷할 또래의 소녀와 그들이 모두 사랑하는 한 존재... 왜 승전국의 공주인 소녀가 망국의 공주인 소녀가 학대 당하자, "그만 둬, 한 때는 그 애도 나와 같은 신분이었어."란 대사를 쓰게 했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대로 완성했다면 흔한 판타지 로맨스가 되었을지도요?

 다만 베르디란 거장의 작품에서 저도 잊어버리고 있던 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 때 어떤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떠올리는 것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원형이란 참 위대한 거예요. 이제는 저도 잊어버린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이야기를 쓸 때의 기분을 떠올리게 해주니까요.

 그 때의 저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죠. 얻은 것은 보편성에 호소하는 정서를 표현하는 스킬과 균형감각, 잃은 것은 처음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할 때의 가슴 두근거림과 열정입니다. 아주 잠깐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 공연 실황은 볼 가치가 있었단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때의 마음을 떠올리고, 정말 내가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했는가와 여전히 좋아하는가를 깨달았으니까요.
 당분간은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 일을, 그리고 나의 일과 놀이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정말 제가 즐겁게 즐기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도 정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베르디 같은 거장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기라성 같은 문호의 작품처럼은 아니어도, 제가 즐거웠던 만큼 다른 사람도 즐거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 실버 2009/12/25 12:32 #

    인생의 새로운 장에 들어가면 전엔 겪지 못했던 이벤트들이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못하고 지우는 퀘스트나 밀리는 퀘스트는 있지만 그래도 하던짓은 다 하고 살게 됩디다. 이를테면 나를 이루고 있는 인생의 축이란거 말이죠. 그건 놓아 버릴 수 없는 '나'라는 거니까요. 아마도 앞으로 필랴님이 쓰실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어 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쨋든 덕질은 계속 하게 되실거에요 ^-^. 화이팅!
  • Filia 2009/12/26 19:07 #

    덕질은 계속하게 될 텐데... 무슨 덕질이 더 늘어날지가 두려울 따름입니... ㅠㅠ
  • 로무 2009/12/25 18:46 #

    응? 시집감?; 뭐 잘만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 수 있다능~ 'ㅅ'
  • Filia 2009/12/26 19:08 #

    아직 퀘스트 시작도 안 하긴 했어요... 막상 시작하려니 둘 다 귀찮아서... =ㅅ=;;
    그래도 하긴 해야하겠지라고 생각중이죠. (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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